이번에 피움뷰어 활동으로 여성인권영화제에 대한 기고문을 썻어요. 하면서 많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제가 본 영화들 몇개를 간략히 적어봅니다.
거의 영화제에서 하는 영화는 다 본 것 같긴 합니다만은…ㅋㅎ
먼저 유명하다면 유명할 수도 있는 파도위의 여성들 입니다. 위민 온 웨이브라고 하지요.
네덜란드의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2000년대 초반 낙태가 위법인 나라에서 정치적인 활동과 함께 실질적으로 정말로 도움이 되는
안전한 낙태 방법에 대해 알리는 이야기 입니다. 먼저 그 나라의 법을 피하기 위해 국제법상 영해로 나가아 네덜란드 주소지의 선박은 영해에서는 네덜란드 법을 따르기에 낙태가 위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술, 안전한 시술 즉 약물 낙태 방법을 도와줍니다.
이하 내가 네이버 블로그에 쓴글
‘파도 위의 여성들'은 어떤 의사의 기발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다. 전 세계에서 낙태가 불법이 된 암담한 현실에 충격을 받은 레베카 곰퍼츠는 이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바로 미국 영해를 벗어나, 국제 수역에서 낙태 시술을 하는 것. 레베카의 프로젝트,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s)”은 정부와 군사기관의 압박으로 항구가 봉쇄당한 상황 속에서 ‘부적절한 행사’라는 언론의 지탄을 받으며, 드디어 첫발을 뗀다. 그러나 다가올 현실은 그보다 더 험난한 법. 레베카는 수많은 암초를 헤치며, 법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간다. 다큐멘터리는 출산에 대한 권리가 여성에게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 레베카와 어떤 관계망을 형성하며 그를 실현해 내는지를 보여준다.
레베카는 용감하며 그의 발자국은 그 나라의 결국 법까지 뒤흔들며 결국엔 수년 뒤 낙태죄가 폐지되는 도화선이 되는 인물이다. 이제는 '위민 온 웹'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정부가 막은 사이트로 낙태약을 받아볼 수 있는 사이트로 각 나라의 어려운 상황의 여성들에게 희망을 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레베카가 처음에 이동식 진료 시 허가증을 발급받지 못해서 아일랜드에 도착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때 한 언론 기자가 묻는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세요?' 그러자 그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빼앗은 건 내가 아니라 이 나라의 정부가 정한 법이에요' 많은 시위대의 반항과 직접 부딪히지만 그는 지지 않고 당당하다. 또 한 기자가 묻는다 '낙태 경험이 있으신가요?' 레베카는 무례한 질문임을 상기시키며 되묻는다. "당신은 앰네스티 위원에게도 고문당한 경험이 있냐고 묻나요?". 임신중절에 대해 혹은 가정폭력 심지어는 이혼 등의 문제에서 개인적인 경험이 있어야지만 의견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지성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대답에 통쾌하면서도 정말 머리가 띵 해졌다. 국제 사면 기구에서 인권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신도 고통을 겪어봤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공감을 하며 생각으로 판단하여 의견을 내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레베카의 모습에서 정말 굳은 의지가 보였다.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 하는구나. 그는 낙태 시술보다는 선전에 가까운 행동도 많이 했다. TV에 나와서 안전한 낙태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미소프로스톨'이라는 약물로 낙태를 하는 법을 그냥 방송에서 말한다. 구하기 쉬운 약물이며 약국에서도 판매한다.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복용량을 잘 지킨다면 정말 안전하게 낙태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용기가 과연 어떻게 나왔을까?
우리나라는 저출생이라는 큰 의제를 걸면서 낙태를 임신 중단이 아니라 살인으로 해석한다. 뱃속의 아이도 생명이라는 것이다.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도 생명이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이든 임신을 중단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많고 잘못된 방법으로 낙태를 시도하여 죽는 여성 또한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10분에 3명꼴... 물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사람이 먼저 살아야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 싸움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싸움이 아니다. 이것을 찬반을 동일한 무게로 다루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이는 결코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질 수 없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여성의 건강권을 위해 어디까지 정부와 나라가 통제하느냐의 문제이다. 정부는 계속해서 나라의 존망을 무기로 여성의 몸을 통제해왔다. 더 낳아 혹은 낳지 마 등의 이것을 나라가 통제할 수 있는 권리냐는 말이다. 물론 생명을 중시한다고 해도 말이다.
최근에는 방송인 사유리 씨가 비혼모로써 임신을 한 경험을 알렸다. 이를 두고도 찬반이 나뉘는 진풍경을 보았다. 왜 낙태는 안된다 무조건 낳아라! 외치면서 여성이 홀로 임신을 한 것을 낳는다는 결정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이 많을까? 임신은 여전히 여성 홀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눈에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띠고 있어야만 이 가지는 하나의 과정이며 여성을 은연중에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일 것이다. '어디서 남자가 없이?' 따위의 말을 뱉을 수 있는 자신감 또한 그런 곳에서 나온다고 본다.
낙태를 여성의 기본적인 건강권이며 임신 중단 권리를 비폭력적으로 우아하게 보여주는 것이 <파도 위의 여성들>이라면 낙태를 금지하는 태도 또한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델라웨어 12번가다>. (하지만 영화에서 레베카는 남들에게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이 자신의 의견을 스며들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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